94년 2월 입영통지서를 받았다. 당시 동기중에 삼수한 형님이 있었는데, 논산 훈련소에서 편지가 왔다. 현역은 너무 힘들다, 현역오지 말아라, 옆 중대가 의경중대인데 편해 보인다는 대략적인 내용이었다. 이 편지 덕에 현역입영 연장신청을 하고, 의무경찰을 지원해 입대를 하게 되었다. 논산에서 1달을 보냈다. 형식은 내무부에서 국방부에 교육을 위탁한 형태였기 때문에 육군 중대하고 같은 훈련을 받았다. 역시 군대는 내 체질이었다. 화생방도 힘든 줄 몰랐고, 각개전투는 너무나 재미있었다. 논산 훈련소는 수류탄 교장이 멀리 위치해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수류탄 교장 가는 길 슈퍼가 있는데 그 집 딸이 예쁘다는 소문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슈퍼집 아주머니 젊은 시절의 소문이 아니였을까? 한참을 쳐다본 슈퍼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소문과 현실은 달랐다. 동기들과 훈련받는 군대생활은 때론 재미로 때론 전우애로 물들었다. 이 시절 배우지 말아야 할 담배를 배웠다.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우던 모습이 얼마나 편안해 보이던지 유혹에 넘어간 것이였다.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서 담배를 배우곤 했다. 논산훈련소를 수료하고 충주에 있는 경찰학교 420기로 입소를 했다. 4주간 열심히 교육을 받고 성적순으로 자대배치가 결정되었다. 당시 서울에서는 한총련 대학생들의 데모로 인해 의경중대 티오가 많아졌다. 부천에 살던 나는 경기도 티오가 3명밖에 안됨에 낙담했었다. 그런데 시험성적이 좋아 운좋게 경기도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경기도 안산 기동중대에서 첫 군대생활을 시작했다. 아니 의경생활을 시작했다. 방범순찰대라는 이름의 중대였는데 근무지는 파출소, 검문소, 경찰서등 다양하게 부서배치가 되었다. 나의 첫 부임지는 검문소였다. 직원 두 분과 의경 4명이 생활하는 검문소는 아직도 당황스러웠던 기억이다. 막내로 취사까지 해야했기 때문이였다. 밥을 한번도 해본 적 없었고, 반찬은 더더욱 할 줄 몰랐다. 그렇게 맛없는 밥.반찬에 타박받았던 시간은 잠시이고 곧 상황이라는 것이 걸려서 경찰서에서 출동하는 일이 잦아져 검문소 생활은 짧게 마쳤다. 지금도 서안산 IC를 지날 때마다 검문소가 있던 그때 그 자리를 처다보곤 한다. 대구로 서울로 상황에 따라 닭장차는 전국으로 출동을 했다. 군대 이야기로 이 한권의 책을 모두 쓸 수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남자들 아니겠는가? 첫 상황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구로 출동을 나갔는데, 하늘을 보니 까만 점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까만 점들이 점점 커지더니 곧 나에게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다름아닌 데모대들이 던진 돌이였다.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어찌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후 상황은 곧 전쟁터처럼 변했다. 데모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순간은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찾기는 어려웠다. 우리 중대는 데모대에 밀려 방패등 이것저것을 분실했다. 돌아오는 버스안에서의 풍경은 상상에 맡기기로 한다. 워커에 찡이 박혀있는 부대는 의경밖에 없었다. 찡이 허공을 가르때마다 군기는 하늘을 찔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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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三代)에 걸친 아버지의 군대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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