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 다음 세대, 즉 우리 아이들의 세대에는 자식이 부모보다 못 사는 최초의 세대가 될 것이다.라는 말이 어느 날엔 공포로 다가왔다.
아이를 키우고 경제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그 말이 곧 실현될 수 도 있겠구나!
1970년대는 밖으로는 미국과 소련의 양강 대결이 이어졌다.
중남미 국가 대부분은 군부 쿠데타와 군부 독재와 같은 군부이 정치 개입이 가중화 되었고, 브라질은 군정이 계속되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는 이스라엘 선수들을 노린 검은 구월단사건이 터지고 석유파동을 거쳐 마침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사건이 발생했다.
반면, 우리 경제는 격동적인 개발의 시대를 맞았다.
유신헌법 제정으로 군사정권의 정치적 후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아픔은 상당히 컸지만, 6.25 전쟁의 폐허와 수난 속에서 태어난 초기 베이비 부머, 즉 1940년대생과 1950년대생들이 이시기에 성인으로 성장한 시기이다.
바로 내 아버지 세대인 것이다.
경공업에서 이제 중공업의 산업화 시대로 접어들고 경제계 거물인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등의 경제적 활약상이 돋보니던 시절이다.
연간 GDP는 7~8% 이상 성장했으며, 경제개발 5개년 계획등으로 임금 상승과 내수 경제 활성화가 본격화 되었던 시기였다.
내가 태어나던 1973년은 식량 자급 자족율이 100%가 되던 해였던 것이다.
일시적이나마 일인당 GDP가 1,800달러를 기록했다가 오일쇼크로 1,800이하로 떨어졌던 시기였다.
그야말로 혼돈과 성장의 시대가 아니였나 상상해 본다.
1980년대로 넘어오면 세계 경제가 전체적으로 호황을 맞고 있었던 시기같다.
미국과 영국은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와 같은 경재적 자유주의 즉, 신자유주의자들의 등장으로 경제적인 성과를 이루어 냈으나 빈부 격차가 급속히 커졌던 시기이기도 했다.
반면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군사정권하에 민주화 운동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였다.
중산층의 비율이 증가하기 시작하여 대한민국역사상 최대의 호황기라는 말이 있었다.
대학졸업자들은 대기업에 취업이 잘되고, 공무원 시험도 쉽게 출제되었다고 한다. 80년대 중반 석유가격이 안정을 되찾으며 마이카(My car)시대를 열기도 했다.
당시 경제규모는 일본이 곧 미국을 추월할 것 같은 활황기를 맞았다고 한다.
곧 일본의 부동산과 주식거품에 전초 였던 것이였다.
이 시기에 강동구였던 우리 동네는 송파구라는 새로운 구로 탈바꿈하였고, 지금의 잠실이 롯데월드를 기점으로 엄청나게 발전하던 시기이다.
‘강남 1970’이라는 느와르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도 당시의 시대상을 잘 반영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개발의 정점에 있던 1980년대, 이제와 보면 그 당시는 정말 시세차익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정말 좋은 시기였다.
고등학교 당시 잠실주공을 소유했던 내 친구들은 정확히는 친구들의 부모님들은 수지맞았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의 시세차익의 부를 이루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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