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빠의 인생

대기업 생존기(최종)

by 에듀필라서퍼 2023. 11. 21.
반응형

존경하는 분을 만나고 선배 사수와 어려움도 나누며 즐거웠던 첫 직장생활은 직급이 올라가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줄을 만났다.

흔히 말하는 라인이다.

그런데 그 라인을 내가 정하는 게 아니였다.

상급자가 정해 놓은 줄을 따라 가야만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동기 대리와 함께 그 라인을 없애보고자 노력했으나, 그 동기는 건강상의 이유로 휴직을 했고 혼자 남은 나는 살 길을 찾아야 했다.

과장 진급은 내가 가고 싶은 곳의 줄을 어떻게 대는냐의 문제였다.

자리를 만들면 인사고과는 중요한 것이 아니였다.

소위 말하는 정치를 잘해야 진급이 가능한 것이였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중 뜻밖의 스카우트 제의로 회사를 옮겨야하는 결정을 하는 순간을 맞이 하였다.

구매부서에 5년정도 있다 보니 거래처 사장님들의 슈퍼갑이 되어 있었다.

40대를 훌쩍 넘으신 사장님들은 겨우 대리인 나에게 90도 인사는 기본이고 항상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반대로 난 건방짐이 하늘을 찔렀다.

지금 생각하면 젊은 놈이 참 싸가지가 없었던 것 같다.

더구나 그런 내 모습을 잘 알았기에 영업부서로 옮기고 싶은 마음은 커져가고 있었다.

구매와 영업을 다 거치고 나면 훌륭한 경험이 되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대기업에서의 치열한 정치경쟁에서 한 발짝 떨어진 선택을 한 것을 정말 후회할 날이 올거라곤 당시로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 계속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으면 어땟을까 생각을 많이 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다시 복직하는 꿈을 꽤나 오랫동안 꾸었다.

어쩌면 내가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꿈많고 패기많은 신입사원시절이였는지 모르겠다.

무엇이든 흡수할 있는 스펀지 같은 능력이 있을 말이다.

대리로 진급해 사내 정치를 하고 후배 사원을 챙기며 상급자를 챙기는 생활은 적어도 아니였을 것이다.

조직과 정치라는 개념을 확실하게 배웠던 시기였다.

청년들이 창업을 꿈꾼다면 적어도 기업체 생활을 후에 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경험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며, 학교에서는 절대 배울 없는 것이다.

사원생활 4년동안 배운 것은 학창시절 12년동안 배운것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립다.

책임을 지는 상급자가 되는 것은 힘들지도 모르겠다.

당시 동기들이 부서장의 직급까지 올라가 있는 것을 보면 존경해 마지 않는다.

아마 지금의 나라면 결코 해낼 없는 자리일 것이다.

자영업자로서 느끼는 대기업은 그래도 따뜻한 온실임에 분명하다.

 

#그리운_첫직장 #인생을_배우다 #따뜻한_온실 #차가운_시베리아로_나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