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사수 선배와 함께 야근을 하게 되었다.
독일은 우리의 저녁시간이 오후시간이였으므로 팩스보내고 잘 받았는지 확인하는 일이였다.
처음으로 독일로 전화를 해보는 순간이였다.
떨렸다.
독일 발음을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내 발음을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선배가 시킨 팩스 내용을 수십번이고 되새기며 전화를 걸었다.
‘Hello? This is J.S.Park from ooo. .....’
어떻게 대화를 이어갔는지 알 수 없게 시간은 흘러 무사히 팩스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텔레팩스로 주고 받는 내용이 너무나 중요시 되었고, 사문서로는 공식 문서처럼 인식되었던 시절이였다.
몇 년이 지나니 팩스보다는 메일로 주고 받은 것이 더 편하게 변했다.
최근 공공기관과 통화할 일이 있어 말하다 보면 여전히 팩스번호를 물어본다.
편한 이메일 놔두고 왜 팩스번호를 물어보는지 메일로 스캔해서 보내면 안되냐고 물어보니 안된단다.
답답하다.
정부의 문서는 아직도 20세기초를 달리고 있다.
다행히 휴대폰 사진도 팩스로 보낼 수 있는 무료어플이 있는 시대에 살아가니 팩스요청도 요즘엔 불편함이 없다.
스펀지처럼 모든 업무를 흡수한 나는 대리승진 심사자가 되었다.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이다.
우리 과에 동기가 2명이 있었고, 부서에 꽤 많은 동기가 있었다.
고과점수는 학창시절 학점과는 사뭇 다른 시스템이였다.
첫 과장님이 부서를 옮기시고 엔지니어링 사업부에서 새로 과장님이 오신지 얼마 안되는 시점이였다.
머리형 스타일이셨다.
치밀한 전략과 철저한 준비의 지장스타일이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도 자료와 정보가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셨고, 논리와 근거를 확보하는 것을 배워나갔다.
사수 선배는 과장님과 이미 가까운 사이였다.
다른 부서에서 오신 과장님을 편안하게 모시는 선배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머리형 리더셨지만 조금 가깝게 모셔보니 가슴형에 더 가까우신 분이였다.
어려운 점을 잘 해결해 주셨고, 항상 나를 믿어주셨다.
처음 30살이 되던 해에 ‘과장님, 저도 이제 계란 한판입니다’라고 응석을 부렸던 기억이 난다.
과장님은 나와 띠동갑이셨다.
당시 40대셨던 과장님을 지금도 너무나 존경한다.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존경한 분이셨다.
내가 퇴사후 다시 엔지니어링 사업부로 돌아가셨고, 사우디아리비아 현지법인에서 부장까지 지내셨다가 최근에 퇴사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언젠가 다시 인사드리고 만날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계속)
#과장님 #엔지니어링사업부 #구매부 #업무 #첫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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