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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인생

대한민국, 산업화의 시대에서 다양성과 개성의 시대로(3)

by 에듀필라서퍼 2023.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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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입사한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부서도 구매부 인지라 돈을 다루는 것이 흥미로웠다.

세계 여러 나라들과 설비구매를 했다.

최대 2백만 달러의 규모까지 계약했던 기억이 난다.

기업에서 설비의 증설이란 곧 시설투자인 동시에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척도로도 사용된다.

회사의 위치가 강남역에 위치하다 보니 주변 상가들은 항상 사람으로 넘쳐나서 힘들다던 소상공인들의 볼멘소리는 사실이 아닌 걸로 인식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는 개인적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적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40대 아버지들이 느끼는 것이겠지만 30대 때에는 일 밖에 보이지 않는 시기지 않은가?

돌아보면 아이들이 있었다는 걸 알면서도 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마뜩치 않은 이유로 애써 아이들을 외면했던 게 아닌가 싶다.

사회 초년병을 벗어나 대리로 실무의 중심에 선 시기이니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업무에 임했었는지 지금도 품의서를 쓰는 꿈을 꾸곤 한다. 

 

 과거의 이런 저런 배경을 뒤로하고 너무나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고 인정되는 시기이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의 김고연주님의 서평을 보면 ‘ 김지영은 흔한 이름이다. 누구나 주위에 지영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가 있었을 것이다.

(중략) 다양성과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기에 여성에 대한 대표성을 지닌 캐릭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양성과 개성의 시대에는 ’나답게‘사는 것, 그래서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개인의 과제가 되었다.’

 

 전체주의와 공동의 가치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이제 더 이상 발전의 토대가 되지 못함을 보편화의 특수화로 이해하고 있다.

평범하고 보편적인 것이 어느새 특별하게 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아버지의 시대는 지났고 부모의 고생으로 아이들의 미래가 바뀌는 시대도 지났고, 재산을 물려준 다 한들 잘 이어받아 고마움을 느끼는 세대도 이미 지났음을 느끼고 있다.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은 재벌 2세들의 인성은 대체적으로 좋아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노력해 결과를 가지고 부를 창출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최근에는 듣도 보도 못한 직업이 각광을 받고 있다.

바로 유ㅇㅇ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이다.

지상파 방송은 아니지만(요즘은 지상파보다 종편에 볼만한 것들이 많다고 느낀다) ‘랜선 라이프’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우리 아이들이 가끔 벤쯔, 벤쯔 하길래, 무심코 벤쯔가 뭐냐고 물어봤던게 몇 년 전 일이었다.

그 벤쯔라는 친구가 먹방으로 세계를 휘어잡으며(언어가 필요없는 방송이 먹는 방송이라 전세계가 열광하는 듯) 공중파 방송에서 먹방을 선보이며 연수입을 공개했다.

방송중에는 대도서관이란 크리에이터가 가장 큰 수입을 올리는 듯 하다.

이 대도서관이라는 분은 40대 아저씨였다.

물론 30대시절부터 게임방송을 중계하며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보니 부를 창출했고 개인의 다양성이 인정받는 사람이 된 것이다.

벤쯔 크리에이터는 엄청난 양의 음식을 섭취한다 아니 먹는다 진짜로 많이, 그런데 체지방이 10%이하였던 적도 있다고 한다.

좋아하는 먹방을 위해 본인의 자기관리를 너무나 엄청난 한 것이다.. 살

기 위해 먹는 시대도 있었는데 이제는 웰빙의 시대를 넘어, 음식 먹는 것의 대리만족이 위로가 되는 세상이다.

 

  개인의 취향과 다양함이 인정받는 시대가 앞으로 10년간 지속될 것이다.

또한 향후 10년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무대가 된다.

아버지로써 느낄 있는 행복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장성한 아이들이 자기 몫을 하며 사회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행복이 아닐까?

그런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아버지로써 해주어야 것은 무엇일까?

공부만 잘하는 아이를 원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을 잘하며, 대인관계도 원만한 그런 사람을 바란다면 이미 구시대의 사람일 것이다.

가장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가장 행복한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어찌 행복하지 않을 있겠는가?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