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 아버지의 군대생활이 시작되었다. 당시 군대생활은 36개월이었다고 한다. 백골부대에 배치를 받으셨다. 백골부대라 함은 실로 어머무시한 부대이다. 1947년 12월 부산에서 조선경비대 3여단으로 창설되어 사단으로 승격된 것은 1949년 5월이다. 6.25당시 최초로 38선을 돌파하여 국군의 날 제정의 기원이 된 부대이다. 부대 위치가 이쓴 철원.김화지역은 광활한 평야지대, 남북으로 발달한 도로망과 산악능선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북한 대규모 기계화 부대의 주 기동롤로 예상되는 전략요충지라고 한다. 해방 직후 월남한 서북청년단원들이 자원 입대하여 “죽어 백골이 되어서라도 끝까지 싸워 조국을 수호하고 북녘의 땅을 되찾겠다는 굳은 의지로 철모에 그림을 그려 넣고 싸운 것이 백골부대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1960년대 초반 군대상황은 말그대로 참혹한 실정이였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오래 지나지 않은 데다 군사정권이 들어선 때문인지 총기사건이 흔했다. 63년 5월지 경향신문 보대에 따르면 어는 부대의 만취한 운전병이 경기관총으로 동료 병사 4명을 쏴 중산을 입힌 사건이 나온다. 이 사병은 냇가에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 민가에서 기르는 돼지를 쏘아 돼지 주인과 시비가 붙었다. “그놈이 돼지 주인을 죽여야겠다”며 경기관총을 들고 나서다 동료들이 만류하자 벌어진 사건이라고 한다. ‘군대 내 총기사건’은 부지기수로 일어났었다. 아마도 80년대 군사정권 시절에도 많이 일어나지 않았나 싶다. 당시는 언론 통제가 가능한 시기였으니, 숨겨진 총기사건도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엄혹한 시기에 군대를 병장 만기 제대하신 아버지는 항상 내게 말씀하셨다. “공부 열심히 해서 장교로 군대가야 해, 꼭!!” 성인이 되는 날부터 그렇게 과묵하던 아버지는 그런 말씀을 늘 하셨다. 고등학교 시절 교련시간이 좋았기도 해서 군생활에 장교로 지원하고 싶은 마음도 잠시 들긴 들었지만 대부분의 많은 학생들이 입대하는 것처럼 입대하는 방향으로 정했다.
당시 군복무기간은 26개월이였다. 누구나 그렇듯 군대입대하기 전의 모습은 그야말로 망나니와 다름없었다. 불안한 미래에 흔들릴 때로 흔들려, 공부를 할 수도 안정적인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던 시기가 군입대전 청춘들의 모습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유행을 하던 시절, 그 말을 들으며 공감하고 또 반대급부로 ‘아프면 병원이다’를 외치는 나이가 되어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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