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당시 짜장면 한 그릇값은 500원이었다. 아버지 월급날이면 항상 어머니에게 월급 봉투를 내미셨다. 지금 공개하자면 내 어린 기억에 40 ~ 50만원 정도였던 것 같다. 당시에는 항상 봉투에 내역이 적혀 있었고 동전까지도 월급 봉투에 담겨져 있었다. 짜장면을 먹는 날이었다. 당시 짜장면 집은 유일하게 한 곳이 있었고 곱빼기를 간절히 먹고 싶었으나, 아버지외에는 곱빼기를 먹을 수가 없었다. 장롱 속에 아버지 월급 봉투를 찾아보는 것도 어린 나의 즐거움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창 배고팠던 시절이였다.. 전쟁세대도 아닌데 왜 항상 배가 고팠는지 폭식을 해서 초등학교 때는 살이 많이 쪘었던 시절이였다. 일요일이면 아버지를 따라 동네 목욕탕에 가는 것이 생활패턴 이였다. 어머니를 따라서는 7살 때까지 같이 갔었고 살이 볏겨지도록 때를 밀고 왔다. 기본이 3시간 이였다. 초등학생이 된 후로 아버지와 목욕탕을 가게 되었다. 샤워시설이 집에 없고 마당에서 등목하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이였으니 목욕탕은 정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기억이었다. 아버지를 따라가는 목욕탕은 항상 사람이 많이 있었고 부끄러움에 항상 중요부위를 손으로 가리고 아버지한테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뜨거운 탕에 들어가서 땅짚고 헤엄치기를 30분씩 하면 손가락이 퉁퉁 불어 때 밀기 좋은 상태의 몸뚱이로 나오곤 했다. 증기사우나는 지금처럼 스팀이 아니라 뜨겁게 달궈진 돌에다가 물을 부으면 뜨거운 수증기가 생겨 그 열로 사우나를 하는 방식이었다. 사우나 온도가 당시 어린 나의 체감으로는 너무나 뜨거웠다. 성인이 되어버린 큰 아들과의 기억은 조금 멀리 있고, 중학생인 막내 아들과는 지금도 자주 목욕탕을 가곤 한다. 막내 아들이라 그런지 큰 아들과 또 느낌이 너무나 다르다. 지금의 우리 아들들도 나와 똑같은 모습을 보며 씨익~ 웃음이 나오곤 한다. ‘이 녀석들도 아버지가 되면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겠지!’라고 혼잣말을 되뇌어 보곤 한다.
80년대 시대상을 되짚어 보면 아버지는 평일에는 돈을 벌고 주말에는 목욕탕을 같이 가고 야구정도 같이 해줄 수 있었던 여유정도는 있었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어린시절이였다. 말없는 아버지는 삼겹살이라도 구워먹는 날이라 치면 회사 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그래도 웃으며 이야기 하셨다. 지금의 아버지가 된 내 모습은 당시의 아버지 보다는 더욱 가정지향적이 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었고, 아버지의 자리가 훨씬 넓어졌다. 그리고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 본 아버지는 지금의 나처럼 평범한 아버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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