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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인생

아버지 연습, 이제 우리는 가족이야(2)

by 에듀필라서퍼 2023.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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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아이를 맞이하고는 가족이라는 느낌이 없었다. 둘째가 태어나니 이제 우리는 가족이구나라는 감정이 생겼다. 나만 느낀 것일 수 있겠지만, 그것에는 부담감이 작용한 것이다. 한 명과 두 명의 체감은 사뭇 차이가 난다. 우선 챙겨야 할 일이 두배로 늘어난다. 가야할 곳도 두배로 늘어난다. 똑같이 사랑을 나눠주는 기술도 필요하다. 가족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부모.자식.부부등의 관계로 맺어져 한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도 여러 가지 의미로 나뉘어진다. 단순한 거주의 공동체가 아니라 애정의 공동체가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예전 대가족 중심의 사회에서 핵가족 생활로 공동체가 변화되기도 하였다. 처음 결혼을 하고 큰아이가 생겼을 때 우리는 대가족 생활을 하였다. 돈 많은 건물주가 아닌 이상, 재벌이 아닌 이상 서민층의 결혼에는 전셋집 마련해 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고 여겨지기도 하는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당시에는 독립할 여력 없이 3대가 같은 집에 살았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데면데면 대하지 않는것은 너무나 좋았던 순기능이였다. 다만, 어르신들이 아들을 편애해서 차별받았다고 생각하는 딸의 성토는 들어주어야 했다. 둘째를 갖고 대기업에 취직하면서 드디어 5년만에 독립을 하여 핵가족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제 이 집안의 가장은 나였다. 진정한 아버지로서의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아버지로서의 친근함과 따뜻함을 보여주겠다는 다짐과 달리, 말없고 엄한 아버지로 되어가는 자신을 느낀 시기이기도 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안그럴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집은 둘째하고 셋째가 항상 다툼이다. 형제들끼리 서로 사랑하라고 노래부르고 있지만, 아이들은 전쟁이다. 세 살 터울인 남매는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되면서 심해지기 시작했다. 둘째인 누나는 남동생 때문에 어렸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피해의식이 있다. 셋쩨 녀석은 누나의 공격에 지지않고 특유의 깐족을 발산한다. 그러면 누나는 광분을 하며 참지 못한다. 가끔 내 눈치를 보기도 하지만 둘만의 전쟁은 끝날 태세가 없다.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했던가, 큰 아들이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우리 네식구는 식사할때마다 강조했다. ‘너희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남매다’, ‘싸울려면 남들하고 싸워야지 왜 같은 식구들끼리 싸우고 그러니?’‘또 싸우면 밥 안 줄줄 알아!’ 협박이건 타협이건 무슨 말이든 다 튕겨낸다. 곧 더 성숙해지면 둘도 없는 사이가 될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믿고 기다려 줄 준비가 되어 있다. 잠시 휴전 중이다가 서로가 눈에 들어오면 또 발발한다. 시간이 좀 더 지나야 겠다. 둘째는 막내가 어릴 적 이쁘다며, 귀엽다며 물고 빨고 업고 난리치던 녀석이다. 막내는 누나가 좋다면 항상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녀석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반도 상황과 같은 휴전상황인 것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둘이 사이가 한 핏줄, 한 가족임을 진하게 느끼리라... (마침)

 

  밤늦은 길을 걸어서 지친 하루를 되돌아 오면
언제나 나를 맞는 깊은 어둠과 고요 히 짐든 가족들
때로는 짐이 되기도 했었죠.
많은 기대와 실망때문에 늘 곁에 있 으니
늘 벗어나고도 싶고 어떡해야 내가 부모님의 맘에 들 수가 있을 지 모르고
사랑하는 나의 마음들을 그냥 말하고 싶지만
어색하기만 하죠. 힘겨운 하루를 보 낸 내 가족들의 낮은 숨소리엔
어린 날 보살펴 주던 내 누이의 고마운 추억이 있 죠.
가족이어도 알 수 없는 얘기 따로 돌아누운 외로움이 슬프기만 해요.
아무 이 유도 없는데 심술궂게 굴던 나를 위해 항상 참아주던 나의 형제들
사랑하는 나의 마음들을 그냥 말하고 싶지만 어색하기만 해요.
힘이 들어 쉬어가고 싶을때면 나 의 위로가 될
그때의 짐 이제의 힘이 된 고마운 사람들.
어떡해야 내가 부모님의 맘에 들 수가 있을 지 모르고
사랑하는 나의 마음들을 그냥 말하고 싶지만 어색하 기만 하죠
사랑해요 우리 고마워요 모두 지금껏 날 지켜준 사랑

- 이승환의 <가족> 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