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에 이어 딸 쌍둥이가 찾아와 아이 셋의 아빠가 된 처남은 늘 퇴근 후에 월요일마다 술을 한잔씩 하며 나한테 즐거운 음악을 보내주곤 한다. 어느 날, 처남의 한마디 “우리 아버지는 평생을 직업이 없으셨는데, 저는 10년 넘게 회사생활을 하고 있어요! 매형!” “그렇게 열심히 가족을 위해 일하고 있는데 집에 오면 아이도 봐야하고 집안 일도 도와야 해요 ㅜㅜ” 힘들다는 얼굴 빛이 역력했다. 내가 말했다. “처남, 집안 일은 아내를 도와 주는게 아니고 같이 살고 있는 내 공간을 같이 가꾸는 거야~” “그래도 저는 경제권이 있자나요, 좀 해주면 안 되나요?” “할 수 있지, 당연히 할 수 있지! 관점을 바꾸면 처남댁도 처남한테 많이 희생하고 있는 걸 알 거야~” 무슨 옛 성인같은 말을 남겼다. 내가 집안 일 하는 것이 힘들면서도 말이다.
월요일이면 항상 그의 표현대로 술 한 잔 치는 처남은 몇 달 전 한참 유행하던 김연자 가수의 ‘아모르 파티’라는 노래를 보내왔다. 노래에는 심금을 울리는 가사들이 너무나 많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단순히 즐거운 인생을 뜻하는 제목이 아니었다. ‘아모르 파티’는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운명관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삶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힘들더라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니체의 운명애(運命愛)인 것이다. 아버지로서의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자로 태어나 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가며 누군가가 나에게 아버지라고 불러주는 아이를 만나, 운명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버지 아니겠는가? 이쯤에서 니체가 이렇게 뽕짝의 아버지로 느껴지는 건 나만의 착각인가? 왠지 어렵기만 했던 그 이름이 너무나 친숙해졌다.
나는 누구의 아버지가 되어 있다. 누군가가 바라봐 주는 나의 모습이 아버지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아버지가 되는 순간은 우리 아이들이 나를 바라봐 주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내 아이들이 보는 나의 모습이 아버지인 것이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나는 소망한다. 아버지라는 한 남자가 있었고, 그 남자가 내 아버지였다는 것이 기억되기를......
<‘응답하라 1988‘에 성보라의 나래이션 중>
어릴 적 우리 집엔 슈퍼맨이 살앗다. 그는,
세상 고칠 수 없는 물건이란 없는 맥가이버였고,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일이 생기면 나타나 모든 걸 해결해 주슨 짱가였으며,
약한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히어로 중의 히어로였다.
하지만 철부지를 벗어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다만 들키지 않았을 뿐 슈퍼맨도 사람이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꼽고 슬프고 무섭고 힘겨운 세상들이 아빠를 스쳐갔는지를, 그리고 이제 간신히 깨닫는다.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꼽고 슬프고 무섭고 힘겨워도 꿋꿋이 버텨낸 이유는,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음을,
가족이 있었고 내가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다른 누구도 아닌 아빠의 이름으로 살아야했기 때문이었음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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