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다보면 길이 보이겠지!’ 하루를 정말 열심히 살아 내었던 30대시절을 돌아본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다 술을 전혀 못하신다.
대학시절 나의 주량은 소주2잔이였다.
군대에 입대해서 담배를 배웠고, 회사에 입사해서 술을 배웠다.
아이들도 어렸다. 초등학생, 유치원생이였으니 집에 들어가면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다.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에 감사했다.
주말이면 여기저기 아이들과의 추억을 쌓곤 했다.
40대에 들어서는 뭔가 불안한 감정이 더 많이 생긴다.
20대에 가졌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을 보며 느껴지기 시작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를 12시까지 기다리며 ‘몇년 지나면 성인이되고 시집도 가고 장가도 갈텐데......’ 몸은 성인처럼 커져버린 아이들을 바라보면 아파서도 울어서도 안되는 아버지라는 단어에 엄청난 무게감이 실린다.
요즘 경제학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재미있다.
알랭드 보통이 말했던 자본주의 안에서 느끼는 자격과 지위에 대한 불안감도 밀려오곤 한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던 원죄적 실존에 대한 불안같이 거창하고 철학적인 아버지도 막연하게 다가온다.
아버지로서 가족의 삶을 제대로 꾸려나가는 것이 만만치 않음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현실적인 불안이 너무나 크다.
아이들이 어릴 적 불러주었던,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자나요~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라는 노래는 절로 힘이 나는 노래였다. 이 노래를 불러주던 딸이 이젠 고등학생이 되어 버렸다. 더 이상 이 노래를 불러주진 않지만, 다시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더 이상 힘이 나는 노래가 아닌, 걱정과 불안의 증폭시키는 노래로 바뀌어 있었다.
4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장례식에 갈 경우가 많이 생긴다.
친구나 선후배 부모님 또는 지인들의 죽음을 지켜보곤 한다. 달랐다. 느낌이. 어려서 기독교 교회에서 아내를 만나고 결혼 주례도 목사님이, 큰아들은 태어나자 마자 교회의 세례를 받은 바 있는데 현재는 종교가 없다.
사는 게 바뻐서라는 말도 할 수 있겠지만, 교회가 주는 믿음을 받지 못했다.
자본주의에 너무 물들었나 보다. 어릴 적 아버지처럼 따랐던, 이모부가 최근 소천하셨다.
장례식 내내 슬픔과 충격에 제대로 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10년을 넘게 뇌졸중으로 투병생활을 하신 것에 대한 유족들의 아쉬움과는 다른 감정이였다.
젊으신 시절부터 유독 말씀도 잘하시고 사교성도 좋으셔서 직장에 인정받고 가장으로 행복한 시절을 보내셨던 분이였다.
회사를 그만두시고 택시운전을 하시며 피로에 그만 병을 얻으셨다.
장례식장에 연락을 받자마자 처음 도착한 그 곳은 너무나 춥고 어두웠다.
이모부의 마음 속에 응어리가 느껴졌다.
자식을 둔 부모라면 누구나 느꼈을 그런 슬픔이 느껴졌다.
관을 맞추고 염을 하고 화장을 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3일만에 이루어졌다.
인생의 덧없음이 가슴을 후벼팠다.
언제나 내 부모님도 나도 자식도 다 나이먹고 늙어가고, 한 줌에 흙이 된다 생각하니 또 아파왔다.
어떻게 살 것인가와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가운데 서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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