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아들의 첫 직장생활로 집안에서의 위상도 급격히 변해있었다. 큰아들의 돌도 지나기 전에 취업해 사회생활을 해야했던 아내는 슬슬 회사생활을 접을 준비를 했다. 함께 살던 부모님도 슬슬 내 눈치를 보시며 아들 밥상을 차려주라는 무언의 압력을 아내에게 주셨다. 당시 인천에 살던 나는 강남까지 가는 인강여객버스를 애용했다. 거의 매일 회식자리이다 보니, 아침을 먹고 버스에 오르면 배가 끊어오르던 적이 빈번했다. 한 번은 올림픽대로 한가운데 버스를 세우고 볼 일을 보러 뛰어간 적이 있다. 그때 같이 탑승했던 만원버스의 시민들에게 뒤늦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그래도 출근길은 항상 즐거웠으며, 회사생활은 내 책임감을 만족시켜주는 유일한 공간이였다. 당시 29살이였던 나는 아침밥상을 받는 것이 얼마나 뿌듯하던지 기억이 생생하다. 그도 그럴것이 취업전의 생활은 밥을 먹어도 몰래 밥상을 차려 방에서 먹곤 했다. 연로하신 부모님께 취직못한 아들이 당당할리 없었기 때문이리라. 서러운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애딸린 아버지가 어떻게 취업할려고 하냐는 말은 안중에도 없었다.
24시간 중에 잠자는 시간을 빼곤 온통 직장생활이였다. 당시만해도 토요일 오전근무가 전사업장으로 퍼지지 않은 상태였다.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도 회사일의 연장선인 경우가 많았다.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너무나 감사했다. 출근할 수 있는 곳이 있어 감사했다. 지금도 우리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고 말해주곤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는 나이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강요한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고 말이다. 중학교 1학년도 진로활동이 있다. 아직 성숙하지도 않은 우리 아이들에게 알지도 못하는 미래를 꿈꾸라 말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 아이가 제대로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인지 자문을 한다. 내 경험상으로 열심히 공부하면 무엇을 해야할지 보인다. 공부하지 않고 무엇을 찾아야 할때는 그 선택의 폭이 너무나 제한 될 수 밖에 없다. 첫째 열심히 공부해서 무엇을 해야할지 많은 것들을 생각해야한다. 둘째 그 중에서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을 수 있다. 셋째 잘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결정을 하고나면 그 안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야 할 것이다. 고등학생이 된 딸에게 이 말을 계속 해주고 있다. 딸아이는 ‘나는 내가 뭘해야할지 모르는데, 자꾸 학교에서는 찾으라한다’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슬기로운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고 서로 협업해야 하며 모든 것은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슬기로운 직장생활은 내 안에 있는 나에게 달려있다. 강제로 맺어진 인연이지만 소중한 동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조금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숨막히고 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낼수 있을 것이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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