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인생38 아버지란 무엇인가(1)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버지라는 단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니 인식하지 조차 않았다. 지금까지 내 아버지를 한 번도 아버지라고 소리 내어 불러 본 적도 없는 그저 어이없는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 있다. 처음 나의 아버지의 모습은 엄마 옆에 있는 내 모든 것을 함께 하는 남자였다. 그런 그가 싫었다. 함께 먹는 밥상에서는 항상 아버지에게 양보하는 반찬들이 많았다. 그 밥상에서 나에게 양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어린 나의 모든 것은 어머니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었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항상 내게 아버지 험담을 하셨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어머니의 하소연이였다. 어디고 그 서운함을 얘기할 곳이 없었던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상에서는 항상 아버지 먼저였다. 부끄럽게도.. 2023. 12. 1. 삼대(三代)에 걸친 아버지의 군대 이야기(3) 참 군대생활이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다. 보통 늦게 피는 기수는 20개월하고도 힘든 경우가 많은데, 15개월정도 군생활을 하니 고참급에 들어갔다. 그리고 운명의 보직변경이 되었다. 군입대전 면허증을 따고 입대한 것이 도움이 되어 방범순찰대에서 본경찰서 경리계 소속 의경으로 배치되었다. 직무는 경찰간부 운전병이였다. 군인임에도 사복을 입고 활동할 수 있었다. 물론 최종 목표는 1호차 운전을 꿈꿨다. 당시 1호차를 운전하던 김 길홍 수경님이 너무 멋있었다. 혹 이 책을 보시면 육 영수 수경님하고 같이 연락주시면 너무 반가울 것 같다. 또한 군대생활을 잊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곧 이야기할 내가 아버지가 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결혼을 군대시절 했던 것이였다. 복중에는 이미 큰아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 2023. 11. 30. 삼대(三代)에 걸친 아버지의 군대 이야기(1) 1960년대 초 아버지의 군대생활이 시작되었다. 당시 군대생활은 36개월이었다고 한다. 백골부대에 배치를 받으셨다. 백골부대라 함은 실로 어머무시한 부대이다. 1947년 12월 부산에서 조선경비대 3여단으로 창설되어 사단으로 승격된 것은 1949년 5월이다. 6.25당시 최초로 38선을 돌파하여 국군의 날 제정의 기원이 된 부대이다. 부대 위치가 이쓴 철원.김화지역은 광활한 평야지대, 남북으로 발달한 도로망과 산악능선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북한 대규모 기계화 부대의 주 기동롤로 예상되는 전략요충지라고 한다. 해방 직후 월남한 서북청년단원들이 자원 입대하여 “죽어 백골이 되어서라도 끝까지 싸워 조국을 수호하고 북녘의 땅을 되찾겠다는 굳은 의지로 철모에 그림을 그려 넣고 싸운 것이 백골부대의 상징이 되었.. 2023. 11. 28. 대한민국, 산업화의 시대에서 다양성과 개성의 시대로(3) 대기업에 입사한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부서도 구매부 인지라 돈을 다루는 것이 흥미로웠다. 세계 여러 나라들과 설비구매를 했다. 최대 2백만 달러의 규모까지 계약했던 기억이 난다. 기업에서 설비의 증설이란 곧 시설투자인 동시에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척도로도 사용된다. 회사의 위치가 강남역에 위치하다 보니 주변 상가들은 항상 사람으로 넘쳐나서 힘들다던 소상공인들의 볼멘소리는 사실이 아닌 걸로 인식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는 개인적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적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40대 아버지들이 느끼는 것이겠지만 30대 때에는 일 밖에 보이지 않는 시기지 않은가? 돌아보면 아이들이 있었다는 걸 알면서도 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마뜩치 않은 이유로 애써 아이들을 외면했던 게 아닌가 싶다.. 2023. 11. 25. 대한민국, 산업화의 시대에서 다양성과 개성의 시대로(2) 1990년대는 세계적으론 냉전이 종식되고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가 확립된 시기이다. 1990년 독일의 통일과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는 그야말로 이념을 넘어선 쇼크와 충격이였다. 이후 수많은 통신기기의 등장은 신자유주의의 성장을 주도했다. 당시 유럽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체질개선을 하는라 엄청난 성장통으로 고생을 했다. 특히 유고슬라비아는 1990년대 내내 내전으로 전쟁터였다. 소비에트 연합의 붕괴 이후 중국이 급부상하여 급속도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천당과 지옥을 오간 시기였다. 88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로 인한 후광을 업고 장밋빛 경제 전망이 펼쳐졌다. 하지만 성수대교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등의 인재가 일어났던 시기이기도 하다. 1995년에는 GDP가 1만 달러를 .. 2023. 11. 24. 대한민국, 산업화의 시대에서 다양성과 개성의 시대로(1) 어쩌면 우리 다음 세대, 즉 우리 아이들의 세대에는 자식이 부모보다 못 사는 최초의 세대가 될 것이다.라는 말이 어느 날엔 공포로 다가왔다. 아이를 키우고 경제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그 말이 곧 실현될 수 도 있겠구나! 1970년대는 밖으로는 미국과 소련의 양강 대결이 이어졌다. 중남미 국가 대부분은 군부 쿠데타와 군부 독재와 같은 군부이 정치 개입이 가중화 되었고, 브라질은 군정이 계속되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는 이스라엘 선수들을 노린 검은 구월단사건이 터지고 석유파동을 거쳐 마침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사건이 발생했다. 반면, 우리 경제는 격동적인 개발의 시대를 맞았다. 유신헌법 제정으로 군사정권의 정치적 후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아픔은 상당히 컸지만, .. 2023. 11. 23. 이전 1 2 3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