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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인생38

대기업 생존기(최종) 존경하는 분을 만나고 선배 사수와 어려움도 나누며 즐거웠던 첫 직장생활은 직급이 올라가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줄을 만났다. 흔히 말하는 라인이다. 그런데 그 라인을 내가 정하는 게 아니였다. 상급자가 정해 놓은 줄을 따라 가야만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동기 대리와 함께 그 라인을 없애보고자 노력했으나, 그 동기는 건강상의 이유로 휴직을 했고 혼자 남은 나는 살 길을 찾아야 했다. 과장 진급은 내가 가고 싶은 곳의 줄을 어떻게 대는냐의 문제였다. 자리를 만들면 인사고과는 중요한 것이 아니였다. 소위 말하는 정치를 잘해야 진급이 가능한 것이였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중 뜻밖의 스카우트 제의로 회사를 옮겨야하는 결정을 하는 순간을 맞이 하였다. 구매부서에 5년정도 있다 보니 거래처 사장님들의 슈퍼갑이 되.. 2023. 11. 21.
대기업 생존기(3) 같은 과에 동기가 3명이 있으니 2명은 진급하고 1명은 탈락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최근 4년간 인사고과가 좋았던 나는 내심 안심하고 있었다. 과장님과의 대화중 인사고과 점수를 슬쩍 볼 수 있었던 것이였다. 전 부서가 시끌시끌 했던 인사고과이 시즌이 지나고 인사발령이 났다. 구매부 전원 대리 진급이였다. 창사이래 처음있는 진급이였다고 한다. 다만 진급하면서 순환보직으로 부서를 옮기는 동기들이 있었다. 지방 공장으로 가는 동기도 있고, 타부서로 가는 동기도 있고, 같은 부서에서 다른 과로 이동하는 동기도 있었다. 유독 지방 발령자들은 빠른 퇴사를 택했다. 나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 자리에 있으리라 확신했다. 사수 선배는 부서를 옮겼다. 나는 과장님 다음으로 넘버2가 되었다. 내 나이 40이 넘어서 나는 .. 2023. 11. 20.
대기업 생존기(2) 한번은 사수 선배와 함께 야근을 하게 되었다. 독일은 우리의 저녁시간이 오후시간이였으므로 팩스보내고 잘 받았는지 확인하는 일이였다. 처음으로 독일로 전화를 해보는 순간이였다. 떨렸다. 독일 발음을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내 발음을 못 알아들으면 어쩌지? 선배가 시킨 팩스 내용을 수십번이고 되새기며 전화를 걸었다. ‘Hello? This is J.S.Park from ooo. .....’ 어떻게 대화를 이어갔는지 알 수 없게 시간은 흘러 무사히 팩스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텔레팩스로 주고 받는 내용이 너무나 중요시 되었고, 사문서로는 공식 문서처럼 인식되었던 시절이였다. 몇 년이 지나니 팩스보다는 메일로 주고 받은 것이 더 편하게 변했다. 최근 공공기관과 통화할 일이 있어 말하.. 2023. 11. 19.
대기업 생존기(1) 누구나 첫직장에 대한 추억은 너무나 선명하다. 첫직장을 그만둔 후 얼마나 많이 다시 출근하는 꿈을 꾸었는지 모른다. 어떤 때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지각하는 꿈에서 깨어나 회사로 달려가다 멈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였다. 어떤 때는 출근을 해서 일하는 광경이 너무나 생생해서 깨어난 뒤 꿈이였구나하며 허탈하기도 했다. 그만큼 나의 첫 직장은 너무나 화려하고 잊을 수 없던 추억이였다. 지금은 1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강남역과 첫직장에 대한 추억은 방울방울 아련하다. 아침에 출근하면 부장님, 차장님, 과장님, 대리님, 선배님 순으로 인사를 하고 맨 구석 자리에 앉아 그 날 있을 일들을 정리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현대가 방계기업인 회사라 다소 경직되고 상하관계가 확실한 체계를 가진 회사였다. 부장님.. 2023. 11. 18.
내 마음속의 페르소나, 날 닮은 너에게(4) 사랑하는 나의 페르소나 수정아, 수정이가 세상에 태어나던 날, 우리나라에는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6월의 어느 날이었지만, 아빠.엄마에겐 소중한 우리 딸이 태어나던 달로만 생각되는 구나!! 조그만 있으면 또 생일이 다가오네. 그때는 또 우리 가족이 모여 맛있는 외식을 할 수 있겠구나. 그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위로는 오빠와 아래로 남동생 사이에서 무척이나 예민했던 니가 언제나 안쓰럽다. 그래도 아빠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지금 힘이 든다면 누군가가 니 곁에 있다는 뜻이고, 지금 해야할 일이 많다는 건 언제가 너의 미래가 밝다는 뜻일테고, 지금 친구들과의 갈등이 있다면 니가 인생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아빠, 엄마 딸로 와줘서 고맙다. 중2때 아빠가 술을 좀 많이 먹고 전주에서 문자했던 기억이 .. 2023. 11. 16.
내 마음속의 페르소나, 날 닮은 너에게(3) 어려서부터 미술, 음악등 다양한 것을 시켜보았지만 특별히 재능을 찾긴 어려웠다. 학습능력과 운동능력은 보통의 아이보다는 괜찮았지만 탁월한 성향을 보이진 않았다. 대부분의 보통 아이들이 이렇게 커가리라 생각했다. 첫 걸음마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도 눈 속에 담아두려 노력을 많이 했지만 머릿속에서 지워진지 오래되었다. 태어나자마자 고가의 캠코더를 구입해 촬영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는 8mm 테이프로 녹화된 영상이라 현재는 변환시켜 봐야만 한다. 아이가 고1이 된 지금도 그 영상을 못 보고 있다. 여러 가지 기술적인 문제와 내 게으름의 소산이다. 간직하고 싶었던 그 날의 기억들을 열어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자신은 요즘 아이들 말고 1도 없다. 딸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어느 날, 전주에 일이 있어.. 2023.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