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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三代)에 걸친 아버지의 군대 이야기(3) 참 군대생활이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다. 보통 늦게 피는 기수는 20개월하고도 힘든 경우가 많은데, 15개월정도 군생활을 하니 고참급에 들어갔다. 그리고 운명의 보직변경이 되었다. 군입대전 면허증을 따고 입대한 것이 도움이 되어 방범순찰대에서 본경찰서 경리계 소속 의경으로 배치되었다. 직무는 경찰간부 운전병이였다. 군인임에도 사복을 입고 활동할 수 있었다. 물론 최종 목표는 1호차 운전을 꿈꿨다. 당시 1호차를 운전하던 김 길홍 수경님이 너무 멋있었다. 혹 이 책을 보시면 육 영수 수경님하고 같이 연락주시면 너무 반가울 것 같다. 또한 군대생활을 잊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곧 이야기할 내가 아버지가 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결혼을 군대시절 했던 것이였다. 복중에는 이미 큰아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 2023. 11. 30.
삼대(三代)에 걸친 아버지의 군대 이야기(2) 94년 2월 입영통지서를 받았다. 당시 동기중에 삼수한 형님이 있었는데, 논산 훈련소에서 편지가 왔다. 현역은 너무 힘들다, 현역오지 말아라, 옆 중대가 의경중대인데 편해 보인다는 대략적인 내용이었다. 이 편지 덕에 현역입영 연장신청을 하고, 의무경찰을 지원해 입대를 하게 되었다. 논산에서 1달을 보냈다. 형식은 내무부에서 국방부에 교육을 위탁한 형태였기 때문에 육군 중대하고 같은 훈련을 받았다. 역시 군대는 내 체질이었다. 화생방도 힘든 줄 몰랐고, 각개전투는 너무나 재미있었다. 논산 훈련소는 수류탄 교장이 멀리 위치해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수류탄 교장 가는 길 슈퍼가 있는데 그 집 딸이 예쁘다는 소문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슈퍼집 아주머니 젊은 시절의 소문이 아니였을까? 한참을 쳐다본 슈퍼에는.. 2023. 11. 29.
삼대(三代)에 걸친 아버지의 군대 이야기(1) 1960년대 초 아버지의 군대생활이 시작되었다. 당시 군대생활은 36개월이었다고 한다. 백골부대에 배치를 받으셨다. 백골부대라 함은 실로 어머무시한 부대이다. 1947년 12월 부산에서 조선경비대 3여단으로 창설되어 사단으로 승격된 것은 1949년 5월이다. 6.25당시 최초로 38선을 돌파하여 국군의 날 제정의 기원이 된 부대이다. 부대 위치가 이쓴 철원.김화지역은 광활한 평야지대, 남북으로 발달한 도로망과 산악능선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북한 대규모 기계화 부대의 주 기동롤로 예상되는 전략요충지라고 한다. 해방 직후 월남한 서북청년단원들이 자원 입대하여 “죽어 백골이 되어서라도 끝까지 싸워 조국을 수호하고 북녘의 땅을 되찾겠다는 굳은 의지로 철모에 그림을 그려 넣고 싸운 것이 백골부대의 상징이 되었.. 2023. 11. 28.
서울의 봄 후기!! 우리 가족은 한달에 한번 이상 같이 영화를 보러 간다. 하지만 최근엔 이사한지 얼마 안된 집에 80인치 TV를 데려다 놔서 인지, 영화관을 가질 않았다. 영화 '서울의 봄'도 마찬가지였다. 블랙버스터도 아닌데, OTT 나오면 봐야지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입소문이 심상치가 않았다. 대박 조짐, 첫주말 150만 관객 동원! 우리는 일요일 조조영화를 예매했다. 일요일 아침에는 늘상 사람이 거의 없어 한산하게 영화를 보곤 했었다. 이번 영화는 달랐다.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과 차들이 주차장을 꽉 메웠다. 아~뭔가 대박인 영화가 나왔구나! 기대를 하면 영화관에 들어섰다. 22살, 19살된 둘째와 셋째에서 영화보기 전 미리 봐 둘 프리뷰 유튜브를 알려줬으나 역시나 아무도 안보고 왔다. 이 영화는 1979년.. 2023. 11. 27.
대한민국, 산업화의 시대에서 다양성과 개성의 시대로(3) 대기업에 입사한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부서도 구매부 인지라 돈을 다루는 것이 흥미로웠다. 세계 여러 나라들과 설비구매를 했다. 최대 2백만 달러의 규모까지 계약했던 기억이 난다. 기업에서 설비의 증설이란 곧 시설투자인 동시에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척도로도 사용된다. 회사의 위치가 강남역에 위치하다 보니 주변 상가들은 항상 사람으로 넘쳐나서 힘들다던 소상공인들의 볼멘소리는 사실이 아닌 걸로 인식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는 개인적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적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40대 아버지들이 느끼는 것이겠지만 30대 때에는 일 밖에 보이지 않는 시기지 않은가? 돌아보면 아이들이 있었다는 걸 알면서도 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마뜩치 않은 이유로 애써 아이들을 외면했던 게 아닌가 싶다.. 2023. 11. 25.
대한민국, 산업화의 시대에서 다양성과 개성의 시대로(2) 1990년대는 세계적으론 냉전이 종식되고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가 확립된 시기이다. 1990년 독일의 통일과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는 그야말로 이념을 넘어선 쇼크와 충격이였다. 이후 수많은 통신기기의 등장은 신자유주의의 성장을 주도했다. 당시 유럽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체질개선을 하는라 엄청난 성장통으로 고생을 했다. 특히 유고슬라비아는 1990년대 내내 내전으로 전쟁터였다. 소비에트 연합의 붕괴 이후 중국이 급부상하여 급속도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천당과 지옥을 오간 시기였다. 88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로 인한 후광을 업고 장밋빛 경제 전망이 펼쳐졌다. 하지만 성수대교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등의 인재가 일어났던 시기이기도 하다. 1995년에는 GDP가 1만 달러를 .. 2023. 11. 24.